학습된 무력감

     교사가 학교에서 조작적 조건화 과정을 적용하는 경우는 대부분 학생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행동 수정에 관심을 갖는 경우이다. 즉 행동의 결과를 통제하여 학생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활동이 행동 수정이다. 예를 들어 숙제를 제출하거나 원만한 교우관계를 맺는 등 바람직한 행동은 증가시키고, 공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수업 시간에 소란스럽게 하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은 감소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행동 수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 스스로 자기 행동을 통제하고 수정할 수 있는 자기 조절력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단, 이 행동 수정 프로그램을 사용할 때는 그 대상이 쥐 나 비둘기와 같은 동물이 아니라 인격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해야 하며, 특정 행동을 조성하는 것이 과연 교사의 권리인지, 행동 조성을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에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즉 학생들을 충분히 존중하고 긍정적인 효과가 확실히 기대될 때 행동 수정 기법의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다.

     다양한 강화계획과 강화물을 사용해서 학생들의 바람직한 행동의 빈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나아가 학생들이 이미 새로운 행동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알고 있다면 학생들에게 그 행동을 하도록 미리 단서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논설문을 쓰는 법이나 대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들을 모를 때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학생들이 새로운 행동을 하는 방법을 학습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행동을 학습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새롭고 복잡한 행동을 가르치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가 점진적 접근법이다. 이 방법은 조금씩 표적 행동에 가까운 행동이 나타날 때마다 보상해 줌으로써 최종적으로 표적 행동을 습득하게 한다. 동물조련사가 돌고래나 사자 같은 동물들이 정교한 묘기를 부리도록 훈련할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즉 표적 행동을 정하고 그 표적 행동을 몇 개의 작은 단계로 나눈 후 표적 행동에 근접한 행동들을 단계적으로 계속해서 강화해 나간다.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작은 단계로 나누어 조금씩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현명한 부모라면 배변 훈련을 하는 아이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배변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가 여러 번의 시도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보상하고 다음에는 두 번 성공하면 보상하고 그다음에 세 번...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마침내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만든다

     점진적 접근법에서는 표적 행동에 도달하기 위해 여러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 적합한 행동이 나타날 때마다 보상을 준다. 이때의 각 단계에서 주어지는 보상이 행동을 수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른 시일 안에 행동이 모두 변화되리라고 기대하면 실망해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점진적 접근법을 사용하여 표적 행동을 학습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학생이나 교사 모두 행동의 변화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교사가 학생의 행동을 조성하려면 가능한 칭찬을 많이 사용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교사들이 칭찬에 인색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Brophy, 1981). 즉 교사들이 시간당 칭찬을 하는 횟수는 평균 다섯 번 이하이며, 저학년보다는 고학년 학생들에게 칭찬을 적게 한다. 그 이유는 고학년이 될수록 칭찬의 보상 효과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특히 비교적 쉬운 과제에 대해 주어지는 칭찬은 학생 스스로 무시하기도 한다. 흔히 학생들이 학습행동 자체가 아니라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선입견 때문에 학생을 칭찬하는 교사도 있다. 즉 교사는 성취동기가 높고 성적도 높으며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지각한 학생들은 실제 학습 성과와 관계없이 더 자주 칭찬한다고 한다. 그러나 칭찬은 진지하게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즉각적이고, 공정하게, 그리고 학생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질 때 가장 효과적이다.

     학생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벌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조작적 조건화의 원리에 기초한 행동 수정 기법은 행동의 결과를 조작하여 행동을 직접 수정한다. 그러나 같은 반 급우들이 하는 행동의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학습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사회학습이론이고 학습된 무력감은 이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학습된 무력감이란 조작적 조건화 과정에서 벌을 준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음으로써 벌을 회피하도록 조건화된 경우를 말한다. 고전적인 실험에서 고통스러운 전기충격이 가해지도록 고안된 상자 속에 개를 묶어 두어 전기충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이 상자를 낮은 장애물을 설치해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가면 전기충격을 받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이전에 개가 전기충격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전기충격이 가해질 때 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낑낑대는 소리만 냈다. 즉 학습된 무력감이 새로운 학습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나 두 곳으로 구분된 상자에 전기충격을 받은 경험이 없는 개를 넣고 전기충격을 가하자 이 개는 전기충격을 받고 이리저리 날뛰다가 전기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옆쪽으로 훌쩍 뛰어넘어 전기충격으로부터 도망간다. 이 개를 다시 이 상자 속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하면 개는 곧장 전기가 흐르지 않는 옆쪽으로 건너가 버린다.

     불행하게도 인간 역시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새로운 것을 학습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면 더 이상 학습하거나 노력하지 않게 된다. 학교 공부가 영 신통치 않은 학생,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는 어른, 연애만 하면 차이는 젊은이들은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반복된 실패 경험을 통해 학습된 무력감이 조건화되어 어떤 일이든 실패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도전해 볼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사람들의 정서적, 행동적 문제 중 일부는 학습된 무력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 학습장애를 지닌 학생들 가운데에도 학습된 무력감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평소 하는 행동 역시 학습된 무력감이라는 차원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유명한 학자는 프랑스어 강좌를 들었는데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결국 자신에게는 외국어를 학습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프랑스어에 대해 가르치는 교사가 그 학자에게 외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평가하자 프랑스어 공부를 포기해 버렸다. 즉 자신에게는 외국어 학습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후 두 번 다시 외국어 강좌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자 역시 학습된 무력감을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학자로서 명성을 쌓아 외국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스페인어를 배워야만 할 상황에 놓였다. 과거의 기억을 억누르며 자신의 학습 양식에 맞추어 스페인어를 공부하자 이번에는 훨씬 수월하게 스페인어를 학습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학습자의 학습 양식에 맞게 가르치고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였다. 결국 그는 잘못된 학습 방법 때문에 무력감을 학습하게 된 것이다.